쌀시장의 관세화 유예 기간이 2014년으로 종료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개이고,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는 스스로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이다. 매년 약 40만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것과 아울러 그 외 나머지 수입쌀도 누구나 관세만 부담하면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세화 유예 연장을 위해 재협상을 하는 것이다. 매년 약 ‘40만 톤+α’를 의무적으로 수입하되, 그 외 나머지는 쌀 수입을 지금처럼 금지하는 것이다. 추가로 늘어나는 재협상 결과에 따라 α값이 결정되겠지만 약 20∼40만 톤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지금 보다 1.5∼2배 정도 의무수입 물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매년 약 40만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되, 나머지 쌀 수입은 금지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개방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현상유지(standing still)라고 부르는 선택이다.

이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우리나라 쌀 농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것이다. 게다가 첫 번째와 같이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에는 한미FTA 및 한중FTA와 맞물려 자칫 미국산 및 중국산 쌀의 관세율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 이미 현행 의무수입쌀의 70% 이상을 미국산 및 중국산 쌀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쌀 농업의 붕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두 번째 경우처럼 의무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도 국내 쌀 소비의 감소를 고려할 때 쌀 생산의 급격한 감소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세 번째의 현상유지 전략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울러 현상유지 전략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선택이다. 2015년 이후에 한국이 쌀시장에 대해서 현상유지를 선택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DDA 곧 타결된다는 통상관료들은 어디에?

쌀 관세화 문제는 WTO 농산물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 농산물협정은 1993년 12월에 타결되어 각 국의 비준을 거쳐 1995년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1995-2000년까지 6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했고, 개발도상국은 1995-2004년까지 10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했다. 한국은 농업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10년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런데 WTO 회원국들은 각각 2000년과 2004년 이후에는 추가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현상유지(standing still) 상태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은 2000년 12월 31일 수준의 개방상태를, 개발도상국은 2004년 12월 31일 수준의 개방상태를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후속 협정문을 만드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아직도 타결되지 않고 장기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2004년 쌀 재협상을 통해 2014년까지 추가로 의무를 10년간 더 이행하는 잘못을 범했다. 당시에도 현상 유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통상관료들은 DDA 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는 엉터리 전망을 제시하면서 서둘러 쌀 재협상을 마무리하면서 10년간의 추가적인 의무를 덜컥 합의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쌀의 의무수입 물량이 2014년까지 40만 톤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협상은 국제 사회에 한국을 ‘글로벌 호구’로 낙인찍는 계기로 작용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퍼주기 협상’이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2014년으로 끝나는 쌀관세화 유예 이후에도 여전히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도 당연히 다른 WTO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선택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의무수입 물량은 2014년의 40만 톤에서 고정시키고, 관세화로 전환하지도 않고, 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선택을 정부와 통상관료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들이 입만 열만 떠드는 ‘국익’의 측면에서도 세 번째가 최선의 선택이지만 그들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선은 선택은 제쳐두고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놓고 저울질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관세화로 전환하는 선택을 굳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의 통상외교 수준은 필리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WTO에 의무면제 요청한 필리핀

한국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필리핀의 경우에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추가로 쌀의 관세화 유예를 연장했다. 그래서 필리핀도 지금의 한국과 똑같은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유예기간이 끝나고 2012년 6월 필리핀은 WTO에 정식으로 의무면제(waiver)를 요청했다. 관세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무를 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서 다른 모든 회원국들이 현상유지 상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도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의무를 추가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의 요청에 대한 결론은 올해 말에 예정된 각료회의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지레 포기하는 한국의 통상외교와 비교할 때 이러한 필리핀 당국의 노력은 적어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리핀의 쌀 통상외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필리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는 것은 곧이어 한국의 성과로 직접 이어지기 때문이다. 뒷짐 지고 방관만 하다가 무임승차하는 구차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 행여나 정부와 통상관료들이 필리핀의 노력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한심한 행태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사치스러운 것인가?

WTO 농산물협정문의 적용과 의무이행은 WTO 회원국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협정문의 문구 해석에 매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다른 모든 회원국들이 이미 2000년과 2004년 상태에서 현상유지를 해 오고 있는데, 한국만 지난 10년의 추가적인 의무이행에 이어 또 다시 한 번 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2015년 이후 우리가 쌀개방 문제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 이 글은 3.25자 한국농정신문에 실린 칼럼을 부분적으로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