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관련뉴스
처음 > 현장소식 > 농업관련뉴스
 
작성일 : 16-08-24 17:35
[이상길의 시선] 대기업이 농업 살린다는 말을 믿으라고?
 글쓴이 : 전농
조회 : 3,489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405 [359]

1973년 9월11일, 당시 칠레 대통령 아옌데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에 맞서 대통령궁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숨진다.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초국적 자본이 소유·경영하는 구리광산의 국유화 등 혁신적인 공약을 내걸고 추진했던 인물이다.

아옌데 비극의 배후에는 초국적 식품회사인 스위스 ‘네슬레’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옌데는 공약으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로 했다.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옌데의 이런 공약은 칠레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네슬레가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당시 네슬레는 칠레에서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어서, 분유를 무상배급하려면 네슬레의 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네슬레는 제값을 주고 우유를 사려고 했던 칠레 민주정부의 요구를 거부한다. 그 배경에는 칠레의 자립정책과 개혁이 성공할 경우 그동안 누리던 특권이 침해당할까 우려한 미국 등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의 이해가 얽혀있었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스위스 출신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증언한다. 지글러는 이것을 다국적기업에 의한 식량무기화의 사례로 들고 있다.

식량무기화 사례는 카길(Cargill) 등 국제 곡물교역량의 80% 정도를 장악한 ‘곡물메이저’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카길과 합병한 콘티넨탈(Continental)의 경우 1976년 아프리카의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가 경제난 때문에 소맥대금 지불을 1년간 미루자 소맥의 공급을 줄여버렸다. 그러자 빵집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고, 밀가루의 매점매석 등 사회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자이르 정부는 지금까지의 소맥 미수대금을 매달 갚으면서, 앞으로의 소맥대금은 중앙은행에서 현금으로 지불하고, 수입하는 밀가루는 미국 콘티넨탈이 독점한다는 요구사항에 굴복한다.

카길, 몬산토 등 초국적 농식품기업들은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농산물 무역자유화’를 주장하고 정부와 세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미국이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제안한 내용을 실질적으로 작성한 인물이 카길의 전직 임원인 ‘대니얼 암스투츠’였다는 사실은, UR의 결과로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의 본질을 말해준다.

이들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지배를 지역에서 지구적 규모로 확대시켰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기업이 생산한 종자·농약·비료·사료에 의존하는 농업구조가 고착화되고, 유통과 가공까지 이들이 주도하는 농식품체계에 종속돼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을 기반으로하는 농업의 특성이 사라지고, 소농·가족농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카길 등 4대 곡물메이저를 통한 곡물 수입의존도가 60~70%에 달한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이미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시스템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은 국제적인 흉년이나 분쟁 등으로 국제 곡물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마당에 요즘 국내 재벌들이 농업 진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이 유리온실을 통해 농업생산에 진출하려다 농민들의 반대로 포기하더니, 이번에는 이 회사를 인수한 LG 그룹이 새만금에 스마트바이오파크란 것을 만들겠다고 나서 다시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의 뒤에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축산계열화사업을 하는 영국계 축산패커 ‘어드밴스 인터내셔널 그룹(AI그룹)’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초국적자본에 의한 농업 장악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재벌의 농업 진출을 놓고 생산성 향상이니 식량안보니 농민과 상생이니 하며 수용하자는 주장을 펴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앞서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에 의한 농업 장악은 중소·가족농의 몰락뿐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체계를 자본의 손에 쥐어주고,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부를 뿐이다. 이런 주장은 권세를 빌어 ‘독점’을 ‘상생’이라 우기는 ‘지록위마’(말을 사슴이라고 우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