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개방화의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고 해도 그럼 쌀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러려면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맞아야 한다. 그러면 경제적으로는 어떠할까? 경제는 당장의 경제도 있지만 먼 미래의 아니 적어도 10년 앞은 내다보는 경제가 있을 수 있다. 쌀은 어쩌면 우리민족에게는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우리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쌀 한 모금 퍼놓고 빌고 또 빌었던 것 말고도 지금도 면면히 쌀을 대하는 모습은 숭고함 그 자체다. 배고프면 먹는 음식의 한 종류로써 만의 기능과 역할을 쌀에게서 찾는 것은 무리다. 쌀은 설명할 수 없는 가치로써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잠시만 논리적, 과학적, 그리고 경제적, 심지어는 종교적, 문화적으로 따져보고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쌀은 우리의 생명이거늘 쌀을 포기하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모든 농산물은 이미 다 개방되고 쌀만 유일하게 부분 개방된 상태이다. 그런데 5천년 역사를 지켜왔고, 국민의 힘으로 굳건히 지켜왔던 우리 쌀을 포기하는 정부의 굴욕적인 발표를 보면서 참담함을 참기 어렵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며 온 국민의 생명이기에 그 곳간은 우리 곳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쌀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곡물기업에게 우리의 곳간을 맡기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더구나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아무런 국민적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쌀 전면개방을 발표하였다.



정부의 발표는 WTO가 보장하는 협상 일정표도 무시 한 채 미리부터 백기투항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말한 협상 일정표에 의하면 쌀 수출국과 공식 일정은 10월부터 12월까지이다. 이때 협상하면 될 것을 미리부터 쌀 전면개방을 선언한 이유는 강대국을 두려워하고, 국내의 쌀 전면개방 반대 여론을 초반부터 잠재우기 위한 초조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정부의 쌀 전면개방 선언은 상대국과 제대로 된 협상도 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이어서 더욱 위험천만하다. 고율 관세를 선언하더라도 미국 중국 등은 한국 쌀 시장 확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무리한 요구를 끝없이 내세울 것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현상유지, 의무면제 등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통상전쟁에 나서야 함이 당연할 것인데 싸워보지도 않고 미리부터 쌀 관세화를 선언하다니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날 잡아 잡수셔’하고 나오면 불쌍해서 좀 봐주지 않을까하는 순진 전법이라도 사용한 것일까. 벌써부터 관세감축의 압박에 시달리며 방어적 협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돼 쌀을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쌀 개방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쌀 전면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불통을 선언하는 것이고 독재를 선포하는 것이다. 더욱이 언론을 통해 미국 쌀 수출협회가 일본이 TPP에 가입하려면 수입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도록 미국정부에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우리나라 WTO쌀 협상과정에서도 쌀 유전자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묻고 싶다. 정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제 가까운 농산어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연대할 때다. 무엇보다도 지방지치단체인 도와 시군이 정신 바짝차려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체계이다. 물론 시민들의 참여도 중요하다. 이른바 우리지역에 생명밥상공동체를 마을단위, 동.면단위, 군.구단위로 만들어 갈 때다. 세계식품체계에의 종속은 죽음의 길이요, 지역식품체계를 구축하기위한 생명밥상공동체 실현은 생명과 평화의 길임을 깨닫고 시급히 이 일에 몰두할 일이다. 정부는 무책임한 식량주권 포기하는 쌀 전면개방 선언을 당장 철회하고 지금이라도 농민의 소리를 담은 쌀 시장 협상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세우(녹색연합 상임대표)